조선일보 논설위원이신 김낭기 회원께서 어제(8월11일) 아침자 조선일보 칼럼난에
'서울중앙지법 재판장들의 작은 반란'이란 제목으로 게재한 글입니다.
[서울중앙지법 재판장들의 '작은 반란'] 2015.08.11 03:00 김낭기 논설위원
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담당 재판부가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로 정해지자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를 선임했다. 해외 방산업체에서 로비 자금 2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양 전 보훈처장은 이 재판장의 고교 4년 선배인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.
그러자 서울중앙지법은 두 사람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했다. 법원은 "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 소지가 있다는 담당 재판장 의견에 따라 재판부를 바꿨다"고 했다. 재판부를 바꾸지 않고 처음 재판장에게 계속 재판을 맡겨서 이 전 총리나 김 전 처장에게 유리한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재판장이 아무리 증거와 양심에 따라 재판했다고 해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건 뻔하다.
대법원 예규(例規)에는 재판장이 자기와 연고 관계에 있는 변호사가 선임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 우려가 있을 경우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. 그러나 이 규정은 죽은 규정이었다. 지금껏 이 규정에 따라 재배당을 요구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. '연고 관계'의 기준도 없었다. 그렇다 보니 돈 좀 있는 사람은 재판을 받게 되면 재판장과 잘 알 만한 변호사를 수소문하느라 난리였다.
서울중앙지법이 죽었던 규정을 다시 살려내기로 한 계기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라고 한다. 청문회에서 황 총리의 변호사 시절 한 기업인이 대법원 재판을 받게 되자 주심 대법관과 고교 같은 반 친구였던 황 총리를 선임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. 이 기업인이 1·2심에서 횡령죄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. 이 일이 알려지자 '대법원도 변호사가 주심 대법관 친구라고 봐 주느냐'는 쑥덕공론이 들끓었다.
서울중앙지법 재판장들은 대법원까지 의심받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'이대로 가면 큰일 나겠다' 싶어 논의에 나섰다. 그 결과 전관예우나 연고주의 특혜라고 오해받을 소지를 처음부터 없애기로 의견을 모았다. 재판장과 연고 관계에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적극적으로 재배당을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. '연고 관계'의 기준도 재판장 또는 재판부 소속 법관과 고교 동문이거나 대학·대학원 같은 학과 동기, 사법연수원·로스쿨 동기, 과거 같은 부서·로펌 근무 경력 등으로 구체화했다.
연고주의는 법관이 연고 관계에 있는 변호사를 봐주는 것이다. 그 법관도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 연고 관계를 이용해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. 전관예우와 함께 사법부의 대표적 악습이다. 서울중앙지법 재판장들의 '연고 변호사 회피'는 그 악습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. '작은 반란'이라고 할 만하다.
이 반란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전국 모든 법원으로 확산돼 새로운 문화와 전통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. 그래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. 서울중앙지법은 앞으로도 연고주의에 따른 재배당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 이 사실을 매번 공개하라. 자꾸 세상에 알려야 당연한 일로 굳어진다. 변호사 단체는 재배당을 많이 요구한 법관과, 재배당 요건에 해당하는데도 요구하지 않은 법관을 가려내 공개하라. 일종의 사후 평가를 하는 것이다. 여기에 대법관·법원장·검사장 등 고위직 출신 변호사만이라도 연고주의 청산에 동참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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